인증에 내몰리는 축산
인증에 내몰리는 축산
  • 배정은 한국농정신문 기자
  • 승인 2018.01.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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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질병과 최근 살충제 달걀 사건 등 먹을거리의 안전과 관련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친환경, 동물복지, HACCP 등 다양한 인증제도를 만들어 축산과 축산물을 구분 짓고 있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따라서 축산농가에는 이러한 수많은 인증이 숙제처럼 던져졌다. 안전한 먹을거리, 인증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무항생제 인증? 
한우는 전부 무항생제임에도 소비자에게는 오해 일으켜

한우농가와 여러 가지 친환경인증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장 ‘버럭’하는 부분이 무항생제 인증이다. 무항생제 인증마크가 붙어 있는 한우고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인증마크가 없는 한우고기는 항생제가 있다고 오해하기 좋다. 무항생제 인증마크가 붙어 있지 않은 한우고기는 항생제가 검출된 고기인가.

우리나라 축산물 시장은 그리 무책임하지 않다. 무항생제 인증을 받지 않았더라도 소비자에게 유통되는 한우고기에는 항생제가 잔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도축과정에서 항생제 물질 잔류검사를 진행하고 불합격 판정을 받은 한우는 고기로 유통이 불가능하다.

농가들이 한우에 불가피하게 항생제를 써야 하는 경우는 대부분 송아지가 설사병에 걸렸을 때로, 여기에는 수의사의 처방이 동반된다. 또 항생제가 첨가되지 않은 사료를 사용하는 등 축산농가의 항생제 사용이 극히 제한돼있다.

한우협회는 무항생제 인증의 무의미함을 꼬집어 인증제의 명칭을 변경하거나 한우에 대해서는 무항생제 인증을 없앨 것을 줄곧 요구해왔다. 한 농가는 “일단 판매되는 모든 한우고기가 무항생제인데 인증을 받아야만 무항생제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 문제”라며 “원래 무항생제인 것에 오로지 인증마크를 붙이기 위해 왜 농가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무항생제 인증은 우유를 생산하는 낙농가들도 같은 입장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의 방침에는 아직 어떤 변화도 없다. 정부는 명칭을 바꾸기보다 무항생제 취지에 맞도록 기준을 강화하는 게 옳다고 주장하며 “무항생제 인증은 유기축산의 과도기적 단계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도가 소비자의 오해를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 사육 기간 등 축종별 특성을 고려한 무항생제 인증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누구를 위한 HACCP인가
컨설팅비, 인증비, 의무 교육 등 농가부담 크다

지난해 11월 축산물안전관리인증원은 축산농가의 HACCP 인증이 10월 말 기준 6881곳으로 2011년 말 2900여 곳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2.3배 늘었다고 밝혔다. 올해 2월부터 축산물안전관리인증원은 식품안전관리인증원과 통합돼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으로 출범했다.

HACCP은 수백만원의 컨설팅 비용(필요에 따라 선택)과 수십만원의 인증비용, 매년 인증을 갱신하기 위해 농장주가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교육 등 투자하는 비용과 시간이 적지 않은 인증이다.

농가 사이에서는 “갖춰야 하는 시설과 서류가 너무 많아 취득도 어렵지만 유지하기는 더욱 힘든 인증”이라는 평이 자자하다. 이에 부담을 느끼는 농가는 인증 연장을 포기하기 일쑤다.

과정이 고되더라도 노력에 대한 결실이 있으면 좋으련만, 농장의 HACCP 인증 여부는 최종 제품에 별도로 표시되지 않는다. 내 농장은 HACCP 인증을 받았지만, 출하하면 그걸로 끝이다.

현재 HACCP 인증마크 부착은 가공공장 인증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즉, 인증을 받은 농가의 축산물이라도 가공공장이 인증을 받지 않았다면 최종 제품에는 인증마크가 붙지 않는다. 또 반대로 농가가 인증을 받지 않았더라도 가공공장이 인증을 받은 곳이라면 유통되는 제품에는 인증마크가 부착된다.

이와 관련해 인증원에서는 축산농가의 HACCP 인증 제고를 위해 도축장 전광판에 인증 여부를 표시하는 방안을 일부 적용하고 있으며, 이를 지속해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두 HACCP 인증을 받은 안전관리통합인증도 확산하고 있다.

또 컨설팅 과정에서 농가의 피해사례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축산농가 HACCP 인증을 심사하는 인력은 70여명에 불과해 사실상 컨설팅 기능은 불가한 상태다. 70여명이 전국의 축산농가를 직접 심사하러 돌아다니기 때문에 컨설팅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지적이다.

이에 관련 기관을 퇴직한 사람들이 만든 민간 컨설팅업체가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인증기준에 맞는 농장환경 개선 방법에 대해 알려주고 있지만, 간혹 엉터리 컨설팅으로 인증도 못 받고 컨설팅 비용만 들인 농가도 있다. “퇴직자들 자리 만들어주려고 이런 인증제도를 만들었나”하는 볼멘소리까지 나오는 이유다.

인증제도 홍수, 생산비 상승은 곧 소비자가격으로 전이

최근 몇 년간 겨울마다 구제역과 AI를 겪으면서 국민은 바이러스의 전염성과 먹거리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축산농가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봤지만, 그 어디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었다. 국민의 질책은 정부로 향했고, 정부는 그때마다 축산농가를 대상으로 칼을 꺼내 들었다.

이는 곧 온갖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냈고, 친환경인증, 동물복지인증은 그중 하나의 결과물이다. 결국,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축산농가를 수많은 인증제도 앞으로 내모는 꼴이 됐다.

친환경, 동물복지를 고려해서 소를 방목하고 조사료도 많이 먹인 쇠고기를 생산했다고 치자. 그럼 그 과정에서 인증을 받고 축사를 넓히고 비싼 사료를 먹여서 상승한 생산비와 가축의 운동량이 많아져 질겨진 고기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소비자는 그 비용 상승분만큼을 지불하고 국내에서 생산한 축산물을 사 먹을 마음의 준비가 됐는가. 현재도 한우는 ‘비싼 가격’이 소비 활성화의 장벽으로 존재해 협회와 자조금이 앞장서서 유통마진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소비촉진을 위해 할인판매 행사를 지속하고 정부도 축산물 유통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등 유통 개선과 활성화에 애를 먹고 있다. 지금보다 비싼 가격에 지금보다 맛과 풍미가 떨어지는 고기를 내 돈 주고 사 먹을 의중이 있는지 소비자에게도 확답을 받아야 한다. 또 정부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농가의 소득손실을 보전해줄 것인지도 검토해봐야 한다.

또 현재 동물복지, 친환경축산을 지향하고 있는 농가들이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이 판로개척이다. 생협을 통하거나 직접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지 않고서는 일정하지 않은 출하량과 맛을 책임지고 납품해줄 곳이 없다.

손님이 찾아오지 않으면 상품이 팔리지 않고,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축산을 지속할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겉치레에 불과한 인증 여부가 아니라 축산농가가 친환경 사육, 동물복지 사육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부터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온갖 법과 조례로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몰아가고 가축을 키울 축사 한 칸 짓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인 현재로서는 아무리 좋은 인증제도라도 이러한 ‘먹거리 불신’의 상황을 타개하기 힘들다.

생산자와 정부, 소비자 그리고 축산농가가 친환경·동물복지, 나아가 건강한 축산물 생산의 궁극적인 목적을 명확히 알고 이를 함께 이행할 의지만 갖춰진다면 수많은 인증제도를 굳이 농가가 돈을 들여 할 필요가 없고,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을 소비자가 분담할 필요도 없다. 생산자가 정부를 믿을 수 있어야 소비자가 생산자를 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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