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한우협회 20년사
전국한우협회 20년사
  • 한우마당
  • 승인 2019.09.2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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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한우협회의 창립 20주년을 맞아 한우산업 전반에 대한 정보와 한우협회의 활동사항과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전국한우협회 20년사에 대해 소개합니다.

<한우산업의 어제와 한우협회의 시작>

과거의 한우산업

한우는 벼농사와 함께 우리 농업을 대표하는 주요 기간산업으로 역할을 해왔다. 1970년대까지 축력을 이용하기 위해 소를 사육했고, 우차와 농사일에 활용했다.

삼국시대 이미 소를 농사일에 투입했고, 고려시대 들어와 소를 활용한 농사일은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 벼농사를 기본으로 하는 전형적인 농업 국가인 조선은 소가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으로 농우를 소유한 집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1910년 한일 합방 이후 일제는 축우를 4대 기간 생산부문으로 결정하고, 다양한 행정조치를 실시해 축산의 근대화를 도모하는 듯했으나 1937년 중일전쟁 이후 가축과 축산물을 무자비하게 수탈해 갔다. 해방 이후 무정부 상태의 혼란기 속에 소의 무절제한 도축이 전국각지에서 성행했고, 미군정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1947년 축우 도살 제한 법령을 공포했다.

1960년대 들어 농경국가에서 공업국가로 전환되며, 쇠고기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자 농림부는 한우단지 증설 등을 통한 한우 증식을 추진했다. 당시 한우의 육량을 늘리고, 산유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외국에서 전용 육우 품종을 수입했고, 한우와 수입육우와의 교잡과 누진 교배를 통한 개량 시도는 1980년대까지 계속된다. 1974~1994년에도 한우와 샤로레 종을 이용한 합성품종이 육성되기도 했지만 1990년대 전후해 중단되고, 순수 한우 개량 연구로 집중됐다.

생우수입과 한우파동

1980년 이전에는 쇠고기 가격이 급등해도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던 상황이었지만 1980년대 들어 수입 육우 확대와 쇠고기 수입량 증가, 정부의 증식 계획으로 인해 쇠고기 공급량이 증가하면서 소 값 폭락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우골탑이라는 말처럼 소는 대학 등록금과 같이 농촌에서 급히 큰돈이 필요할 때 요긴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당시 소 값 파동에 따른 농민들의 반발 또한 매우 거셌다.

이는 농촌사회의 문제로 대두되어 1987년 쇠고기 수입을 전면 중단하기도 했다. 미국은 1988년 GATT제소해 우리나라는 더 이상 국내 사정을 빌미로 쇠고기 등 축산물 수입을 조절할 수 없게 됐다. 1990년부터 수입할당제가 시행됨에 따라 제한적으로 이뤄진 쇠고기 수입은 수출국과의 협의를 통해 장기적으로 수입 물량을 정해 실시하게 바뀌었다.

우루과이협상 타결을 앞둔 1993년, 한우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는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해 발표했지만 1996년 한우파동, 1997년 외환위기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정상적인 추진이 어렵게 됐다.

전국한우협회의 태동

쇠고기 수입 자유화를 앞둔 2001년 당시 한우농가들은 걱정은 상당히 고조되어 있었다. 1999년 종축개량협회 회장 선거일에 당시 출마한 강성원 후보는 한우농가의 걱정을 십분 이해하여 한우협회 창립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고, 회장으로 당선됐다. 이후 ‘전국한우협회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추진계획을 마련했다.

또한 단체를 운영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므로 각 지역별 발기인대회를 추진해 후원금을 모았고, 지역별 발기인대회가 끝난 뒤 각 도지회가 설립해 도지회장을 선출했다.

1999년 9월 14일 전국한우협회 창립총회가 김종필 국무총리와 5천여명의 한우농가가 모인 가운데 개최하여 만장일치로 이규석 초대회장을 추대하고 임원진을 구성했다.

전국한우협회 출범과 생우수입 반대투쟁

한우농가의 극심한 반발에도 2001년 4월 호주산 생우가 국내 반입되자 한우협회 회원들은 인천 불로동과 부산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앞에서 생우 수입 규탄과 대규모 사육저지 궐기대회를 시작으로 수입저지운동을 본격화하여, 생우수입업자는 결국 입식을 포기하게 됐다.

생우수입 반대 운동의 성공적인 저지로 인해 전국한우협회가 전국의 한우농가는 물론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일반 국민에게까지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어 전업규모 이상의 한우농가들이 대거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조직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기 시작한다.

이후 농가의 반발이 잠잠해진 틈을 타 생우의 수입이 또 다시 시도되자 한우협회는 전국 1만여 한우농가가 1만원씩 기금을 조성하고자 ‘만만운동’발대식을 개최하게 되고, 이 운동은 향후 한우자조금 도입 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2003년 한우협회는 자체적으로 ‘한우유통 감시단’을 발족시켜 명예감시원과 함게 쇠고기 유통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등 둔갑판매 근절에 협회 역량을 집중해 나갔다.

한우자조금 도입

생우수입 저지를 통해 농가간의 강력한 연대의식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얻은 한우농가들은 ‘자조금’ 도입 운동을 돌입하게 된다.

국회의원을 찾아가 자조금 도입의 필요성을 설득하여 법안마련의 중요성을 요청하는 한편 자조금 입법화 서명운동을 전개하면서 법안 마련에 성공한다.

이어 한우자조금 도입을 위한 대의원 선거를 위해 지도자들은 장장 3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진행해 지역별로 단 한곳의 실패없이 대의원 정수의 96%인 240명을 선출하는데 성공한다.

2005년 2월 한우자조금 대의원 총회를 개최해 의무자조금 거출 동의 및 2만원의 거출금액을 확정지었으며, 초대 자조금 관리위원장과 제 1기 한우자조금 관리위원 선출을 통해 한우부문의 의무자조금 시대를 열게 됐다.

이후 연간 300억원 규모의 소비촉진과 교육홍보 사업을 실시하게 된 한우자조금은 국민들 속의 한우산업, 그리고 한우의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부각해 나갔다.

<한우산업의 위기와 한우협회의 역할>

미국산 쇠고기 검역 반대 운동

2001년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 이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발생’ 뉴스가 날아들었고, 한국 정부는 검역을 전면 중단했다. 이에 미국은 쇠고기 시장을 재개방하려며 강도 높은 압박을 이어갔고, 한우농가들은 또 다시 하나로 뭉쳐 ‘검역 주권’을 부르짖었다.

농가에게 힘을 얻은 농림부는 미국을 상대로 대등한 협상을 펼쳤고, 결국 뼈를 포함한 SRM 전부위의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실질적인 수입 금지 효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특히 이시기 한우농가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반대운동을 조직적으로 펼쳐나갔고, 내부적으로는 품질 고급화에 전력을 다하면서 한우고기만의 차별화된 시장을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미 FTA 및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란

‘엑스레이 투시기’까지 동원해 막아냈던 미국산 쇠고기 협상문제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정부 입장도 크게 바뀐다.

작은 뼛조각 하나라도 쉽게 수입하지 않았던 협상 기조가 이명박 정부에서는 ‘30개월령 이상 소에서 생산된 쇠고기’로 수입이 확대됨에 따라 한우농가와 국민들의 엄청난 저항과 반발을 가져오게 된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전국 각지의 촛불집회로 확산됨에 따라 정부는 소비자들의 신뢰가 개선될 때까지 수입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어 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의 잇따른 사과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한우농가들이 가장 열망해왔지만 현실화되기 어려웠던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의 전면 실시 카드를 꺼내들게 됐다.

광우병 파동속에서도 한우산업의 피해 대책을 마련하는데 골몰해왔던 한우협회의 치밀한 농정활동으로 결국 값진 열매를 수확해 낸 것이다. 이어 협회는 이력추적제와 같이 한우산업과 농가를 보호하는 법적·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이끌어 내는 저력을 발휘했다.

3차 한우파동

3차 한우파동은 2011~2013년 발생했다. 2010년 단군 이래 최고값이라는 표현까지 나온 한우가격은 다양한 대책과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300만두를 넘어갔다.

이듬해인 2011년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 발생으로 인해 설 성수기 이동제한이 걸려 제때 출하하지 못한 한우물량이 3~4월에 몰리며, 한우파동의 단초가 됐다.

결국 한우가격의 고전은 2011년 내내 이어졌고, 한우협회는 2012년 1월 청와대 한우 반납운동을 개최하여 강경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한우협회는 청와대와 국회를 설득하며 아스팔트 투쟁과 물밑협상 끝에 300억원의 수급조절 예산을 얻어 10만두에 달하는 암소 도태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지속적인 가격 하락으로 인해 2013년 7월 한우협회는 ‘소값 회복 촉구를 위한 투쟁’을 선포하며, 국회앞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농협음성공판장 앞에서 총궐기대회를 열고,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한우산업, 전국한우협회의 오늘과 미래>

대표축제로 거듭난 ‘대한민국이 한우먹는 날’

한우협회는 한우산업과 한우고기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큰 관심과 사랑이 지금의 한우산업을 만들었고, 원산지표시제가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며, 매년 11월 1일을 한우의 날로 제정해 ‘대한민국이 한우 먹는 날’행사 개최로 국민들에게 보답하기로 했다. 2008년 처음 시행하게 되면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대대적인 할인행사 등을 통해 전 국민이 함께하는 한우축제를 만들고자 했다. ‘한우의 날’ 제정 기념행사로 개최된 ‘대한민국이 한우먹는 날’행사는 의미가 남달랐는데 수개월간 진행된 강우병 쇠고기, 미국산 수입 반대집회 이후에 열리는 행사이니 만큼 한우농가들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안전한 우리 한우를 꼭 지켜내야 한다는 의지가 녹아져 있었다.

만 10년째인 2019년 전국한우협회는 11월 1일은 대한민국이 한우먹는날 행사를 소비자와 함께하는 진정한 한우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2천석 규모의 숯불구이 존이 5일 동안 만원사태를 이루고, 준비된 한우고기가 연일 완판됐다. 이어 한우협회의 각 도지회와 시군단위의 예산을 늘려 행사의 내실을 기하는 동시에 전국적인 한우고기 소비촉진의 날로 더욱 발전시켜 나갔으며, 대형유통업체도 함께 참여함에 따라 한우거래가격 상승 효과까지 생겼다.

한우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

그간 한우 부산물은 도축장에서 수의 계약에 의해 특정 업자가 관행적으로 구매했고, 가격 정산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마리 단위로 거래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부산물 가격 결정에 끊임없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한우협회는 붙투명한 부산물 유통구조, 가격결정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경매나 전면 경쟁 입찰 방식으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공판장의 부산물 거래 방식이 한우협회의 주장에 맞춰 변경됨에 따라 부산물 거래의 오랜 관행이 깨지면서 부산물 시장이 시장 수요에 근접한 가격으로 형성되게 됐고, 농가 수취가격이 상승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공판장의 출하 관련 농가의 민감한 갈등요인으로 대두되어 한우협회는 2015년 음성공판장 앞에서 총궐기대회를 시작으로 이후 지속적으로 출하예약제 개선 요구를 촉구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 결국 한우협회는 자체적으로 한우농가들의 출하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됐고, 도축업계와 육가공업체와 협력해 ‘한우직거래유통망’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한우협회의 직거래유통망 구축 이후 한우농가들은 한우협회를 통해 원활하게 출하할 수 있게 됐고, 그간의 불합리한 관행을 고쳐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한우의 세계화

2000년 중반까지 사육기반이 회복되지 못했던 한우산업은 한우개량사업 촉진 등 한우의 본격적인 품질고급화 사업 추진과 사양기술 개발과 확산 등에 힘입어 시장에서의 확실한 ‘차별화’를 이뤄냈고,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타진하기에 이른다.

2010년대의 한우수출은 한국을 넘어선 새로운 한우고기 소비처의 발굴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일본의 화우고기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최상급 쇠고기’라는 한우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시도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정부와 업계의 노력에 힘입어 한국과 홍콩 정부 간 검역조건체결과 수입허가 신청을 통해 한우업계는 2015년 12월 홍콩시장에 첫 수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2015년 홍콩시장 개척 이후 한우업계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식품산업의 테스트 마켓으로 불리 우는 홍콩시장에서 한우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브랜딩하기 위해 자조금을 활용한 유통과 마케팅부분에 대한 심층 분석과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성과를 얻어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진행 중에 있다.

농협 적폐청산에 나서다

대다수의 한우농가들은 축협 가축시장에서 송아지를 구매해, 축협을 통해 사료를 구매하고, 농협 공판장을 통해 한우를 출하해왔다. 축협을 이용하는 농가들 중 농축협 이용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농가들이 많아졌고, 2017년 전국한우협회는 농협 적폐청산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한우협회는 농협중앙회 앞 광장에서 농협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도별 릴레이집회를 열었고, 농업계에 큰 울림을 남겼다. 한우협회의 농협적폐청산 운동을 통해 농협 및 계통사료 가격 인상이 4년간 동결되는 효과로 이어졌고, 비육우 배합사료 시장 가격이 안정되는 효과를 내며 농가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으로 귀결됐다.

이후 한우농가와 농협사료간의 갈등이 여러 차례 펼쳐졌지만 농가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농협사료의 소극적인 상황이 반복됐다. 결국 한우협회는 사료, 출하, 브랜드 등 여러 가지로 연결되어 있는 복잡한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제대로된 권리를 찾지 못하겠다는 판단에 따라 한우협회 전용 OEM사료를 출시하게 됐다. 한우협회 전용사료는 국내에 공급하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품질 좋은 사료를 지향하면서, 사료업계의 사료가격 선도 기능과 견제 기능을 수행하다는 포석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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